영화에서 ‘각본’은 단순한 스토리의 나열이 아니라, 캐릭터와 서사의 결을 탄탄하게 다지는 핵심적인 요소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각본상 부분에는 독창적인 스토리와 깊이 있는 서사를 담은 다섯 작품이 후보에 올랐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각 후보작을 살펴보고, 최종적으로 수상작이 된 작품과 선정 이유를 소개한다.
1. 각본상 후보작, 각본가 소개
《나이브스 아웃》라이언 존슨
《결혼 이야기》 노아 바움백
《1917》 샘 멘데스, 크리스티 윌슨-케언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기생충》 봉준호, 한진원
2. 각본상 후보작 정보 : 줄거리, 키워드
1) 《나이브스 아웃》
너희는 마치 연회에 모여든 독수리 떼 같아. 칼을 들고 피범벅을 부리지.
유명 추리 소설가 '할란 트롬비'가 85세 생일파티 다음 날, 자신의 대저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경찰은 단순한 자살로 보지만, 유명 탐정 '브누아 블랑'이 사건에 의문을 품고 조사에 나선다.
할란의 가족들은 겉으로는 화목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모두 유산을 탐내며 각자의 비밀과 갈등을 품고 있다. 블랑은 할란의 간병인 '마르타 카브레라'에게 관심을 보이는데, 그녀는 거짓말을 하면 구토하는 습관이 있어 진실을 감추기 어렵다. 마르타는 실수로 약을 잘못 투여했다고 믿고 있었고, 할란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자살로 위장했다
블랑은 실마리를 분석하며 이 모든 것이 철저히 계획된 범죄였음을 밝혀낸다. 범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마르타를 함정에 빠뜨리려 하지만 블랑과 마르타의 기지로 진실이 밝혀진다.
진실은 언제나 선의에 의해 밝혀지는가?
부유한 자들은 왜 사회적 책임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가?
키워드 : 미스터리, 가족 드라마, 계급 격차, 도덕적 딜레마, 특권층의 위선
2) 《결혼 이야기》
우린 가족이야. 언제나 가족일 거야.
연극 감독 '찰리'와 배우 '니콜'은 한때 서로를 깊이 사랑했지만, 결혼 생활이 점차 균열을 보이며 이혼을 결심한다. 처음에는 원만한 합의를 원했던 두 사람은, 니콜이 아들 '헨리'와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하고 유명 변호사 '노라'를 고용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진다.
찰리도 강경한 변호사를 선임하며 감정 싸움이 격화되고, 법정 공방은 점점 더 치열해진다. 두 사람은 서로의 단점과 상처를 끄집어내며 싸우지만, 동시에 여전히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법적 절차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갈등이 깊어진다. 부부는 자신이 희생했다는 생각에 억울함을 느끼고, 상처받고, 때로는 냉혹해진다.
결국 법원은 헨리를 니콜과 함께 살게 하기로 결정하고, 찰리는 공동 양육권을 유지하는 것으로 합의한다. 영화의 마지막, 니콜은 찰리의 신발끈을 묶어주며 여전히 남아 있는 애정을 드러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사랑은 끝날 수 있는가?
이혼은 실패인가, 새로운 시작인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관계를 끝낼 수 있을까?
사랑이 어떻게 변하고, 이혼은 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키워드 : 이혼, 사랑, 관계의 변화, 감정 소모, 가족, 희생, 법적 분쟁, 성장, 이해, 용서
3) 《1917》
희망은 위험한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상부로부터 긴급 임무를 맡는다. 독일군이 퇴각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이는 영국군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전략이며, 최전선에 있는 영국군 1600명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다. 블레이크의 형도 그 부대에 포함되어 있어 그는 더욱 사명감을 느낀다.
두 병사는 광활한 전장을 가로지르며 무너진 참호, 적의 저격, 폭발 위험이 도사리는 폐허를 지나간다. 도중에 블레이크는 적군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고, 스코필드는 홀로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강을 건너고, 적진을 피해 가며 고군분투한 끝에 스코필드는 가까스로 최전선에 도착해 명령을 전달한다.
수많은 희생 속에서도 명령을 받은 장군은 스코필트의 말을 받아들이고, 무의미한 돌격을 막아낸다.
전쟁에서 개인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용기와 희생은 언제나 가치 있는가?
키워드 : 전쟁, 희생, 용기, 인간성, 생존, 시간과 사명, 형제애, 전쟁의 무의미함,
4)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넌 릭 달튼이야. 잊지마.
1969년 할리우드, 한때 잘 나가던 액션 스타 '릭 달튼'은 서부극과 TV 드라마에서 명성을 쌓았지만, 영화 산업이 변화하면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스턴트맨인 '클리프 부스'는 릭을 묵묵히 돕지만, 그 역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한편, 릭의 이웃에는 떠오르는 신예 배우 '샤론 테이트'가 살고 있으며, 그녀는 화려한 할리우드의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릭은 자신의 커리어를 되살리기 위해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에 출연하며 분투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과거의 스타로 남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클리프는 우연히 '찰스 맨슨' 일당과 엮이게 되고, 그들의 이상하고 위험한 분위기를 감지한다. 결국 1969년 8월, 맨슨 패밀리는 릭의 집을 습격하려 한다. 맨슨 패밀리의 위협이 다가오면서 영화는 현실과 픽션을 교묘하게 뒤섞는다.
사라져 가는 스타와 새롭게 떠오르는 세대
허구가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영화적 판타지.
폭력과 잔혹한 현실을 유머와 스타일로 뒤틀어, 과거의 비극을 다시 쓴다.
키워드 : 할리우드, 영화 산업, 스타의 몰락, 시대 변화, 허구와 현실, 폭력, 우정, 대체 역사.
5) 《기생충》
돈이 다리미야. 주름진 것도 다 펴주잖아
'기택'의 가족은 모두 무직으로 반지하에서 어렵게 살아간다. 어느 날 아들 '기우'는 부유한 '박 사장'네에서 영어 과외 교사로 일할 기회를 얻는다. 그는 위조된 대학 증명서를 이용해 면접에 합격하고, 이후 가족을 하나씩 박 사장의 집에 취업시키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여동생 '기정'은 미술 치료사로 위장해 박 사장의 아들 '다송'을 가르치게 되고, 이후 운전기사와 가정부를 차례로 몰아내 아버지 기택과 어머니 '충숙'까지 그 집에서 일하게 만든다. 이들은 박 사장의 저택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즐기지만, 어느 날 과거 가정부였던 '문광'이 찾아오면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진다.
문광은 지하실에 몰래 살고 있던 남편 '근세'를 숨기고 있었고, 기택 가족의 정체를 알게 된다. 서로의 비밀을 지키려다 충돌이 발생하고, 결국 생일파티 날 근세가 탈출하며 대혼란이 벌어진다.
희망과 노력만으로 계층 상승이 가능한가
계급 격차와 빈부 격차가 만들어낸 사회적 구조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적응하는가.
가난한 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속임수와 기만을 이용하지만,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벽은 얼마나 터무니없이 높은가.
키워드 : 계급 격차, 기생 관계, 계층 상승의 한계, 인간 본성, 계획과 현실, 냄새와 계급,
3. 제92회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작 및 선정 이유
각본상 수상작 :
《기생충》 (Parasite) 봉준호, 한진원
《기생충》 각본상 선정 이유 :
블랙 코미디, 스릴러, 드라마, 서스펜스 등 다양한 장르를 결합하여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냈다. 가난한 가족이 부유한 가정에 침투하는 과정을 유머러스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풀어내며, 예상치 못한 전개와 충격적인 반전으로 관객을 몰입시켰다. 특히, 쫓겨난 문광이 돌아와 지하실의 존재를 밝히는 장면에서부터 긴장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결말까지의 흐름이 매우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계층 이동이 어려운 현실, 부유층과 빈곤층 간의 보이지 않는 경계, 가난한 자들의 생존 방식 등이 현실적으로 그려지며 전 세계의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냄새’라는 상징적 요소를 통해 계급 차이를 직관적으로 표현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다양한 은유와 상징을 활용해 깊은 의미를 전달했다. 반지하와 고지대라는 공간적 대비, ‘계단’을 통한 신분 상승과 하강의 묘사, 부유층과 빈곤층의 ‘기생 관계’ 등이 촘촘하게 엮여 있다.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보편성을 지닌 스토리와 영화적 완성도가 맞물리며, 할리우드의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뛰어넘는 작품으로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