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이나타운 (Chinatown, 1974) : 너무나 좋아하는 영화!!
《차이나타운(Chinatown)》은 한 줄로 설명하기엔 너무 많은 걸 담고 있는 영화다. 표면적으로는 고전 누아르 탐정극이지만, 속을 파고들수록 권력과 탐욕, 침묵과 외면, 그리고 잊혀진 피해자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1974년 개봉 당시, 이 작품은 로버트 타운의 각본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제4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며 “장르의 틀을 새롭게 정의한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다.
감독은 로만 폴란스키, 주연은 잭 니콜슨. 하지만 이 영화를 진짜로 만든 건, ‘침묵의 서사’를 다룰 줄 아는 각본이었다.
1. 줄거리
1930년대 로스앤젤레스. 사립 탐정 제이크 기티스(잭 니콜슨)는 평소처럼 외도 조사를 의뢰받는다. 의뢰인은 자신을 에블린 멀레이라고 소개하며, 남편인 수자원국 국장 홀리스 멀레이의 외도를 밝혀달라고 한다.
기티스는 남편의 사진을 언론에 넘기지만, 이후 실제 에블린 멀레이(페이 더너웨이)가 등장하면서 사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는 누군가에게 조작된 의뢰를 받았고, 그 배후에는 도시의 수자원, 땅 투기, 권력자들의 음모가 얽혀 있다.
기티스는 조사를 계속하며 LA 수자원 정책의 실태와, 그 중심에 있는 노아 크로스(존 휴스턴)라는 인물에 다가선다. 크로스는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라, 도시의 물줄기를 쥐고 흔드는 권력자다.
기티스가 진실에 다가갈수록, 사건은 단순한 부정부패를 넘어서, 피해자들이 말할 수 없는 구조 속에 갇힌 현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는 한없이 차가운 결말로 향한다.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침묵은 그 어떤 외침보다 무겁게 흘러간다.
2. 감상평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불편한 감정이 따라붙는다. 시작은 익숙한 탐정극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는 무겁고 진지하게 가라앉는다. 처음엔 겉으로 드러난 범죄를 추적하는 이야기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보다 더 말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마주하게 된다. 제이크 기티스는 정의로운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일의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고, 누군가 피해를 본다면 외면하지 못하는 기질을 지녔다. 그가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관객도 함께 긴장하고 불안해진다. 그리고 결국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게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깊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잭 니콜슨은 이 역할을 통해 단순한 영웅 캐릭터가 아닌, 무력한 인간의 얼굴을 보여준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상황, 정의가 통하지 않는 구조 속에서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더 진짜 같아서 더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3. 수상 이유
차이나타운의 각본이 아카데미에서 인정받은 건, 단순히 이야기를 잘 짰기 때문이 아니다. 이 영화는 말보다 말하지 않는 것을 더 많이 보여준다. 대사 하나하나가 절제돼 있고, 인물들이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 안에 깊은 갈등이 숨어 있다.
로버트 타운은 이 작품에서 극적인 반전이나 장치를 넣기보다, 점점 무너져가는 분위기를 만들고 그것으로 서사를 끌어간다. 특히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채 끝나며 관객에게 무력감을 남기는 구성은 기존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기 힘든 흐름이었다. 그것이 오히려 현실에 가까운 감정을 전달했고, 그 점이 각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4. 인상 깊은 장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이다. 경찰이 들이닥치고 총성이 울리고, 에블린은 떠나지 못한다. 그 혼란 속에서 기티스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누군가가 말한다. "잊어, 제이크. 여긴 차이나타운이야."
이 말은 단순한 대사가 아니다. 해결되지 않는 일, 책임지지 않는 현실, 아무리 진실을 밝혀도 바뀌지 않는 세상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말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무기력함의 집약처럼 느껴진다.
또한 기티스가 사건의 진실을 깨닫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장면들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의 표정과 눈빛만으로도 감정이 전해지고, 관객은 말없이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
5. 정리하며
차이나타운은 오히려 요즘처럼 복잡한 세상일수록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영화는 화려하지 않고, 속 시원하지도 않지만, 진짜 중요한 문제를 건드리고, 그 감정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도, 진실을 밝혀낸 사람도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서는 희망이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걸 아는 것이야말로, 진짜 세상을 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