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한 편의 영화가 한 시대의 감수성을 대변한다. 사랑과 전쟁, 인간의 존엄성, 권력과 환상, 삶의 아름다움까지, 이 해의 각본상 후보작들은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색했다. 저마다 독창적인 서사와 탄탄한 인물 구축으로, 관객에게 강렬한 질문과 여운을 남긴 후보작들과, 독창적인 전개로 오스카를 품에 안은 수상작을 만나본다.
1. 각본상 후보작 및 각본가 소개
《인생은 아름다워》 빈센조 세라미, 로베르토 베니니
《셰익스피어 인 러브》 마크 노먼, 톰 스토퍼드
《불워스》 워렌 비티, 제레미 피크저
《라이언 일병 구하기》 로버트 로댓
《트루먼 쇼》 앤드류 니콜
2. 각본상 후보작 정보 : 줄거리, 메시지, 키워드
1) 《인생은 아름다워》
“인생은 아름다워요. 심지어 수용소 안에서도요.”
1930년대 이탈리아 토스카나, 유쾌하고 낙천적인 유대인 청년 ‘귀도’는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서점 일을 시작한다. 그는 귀족 집안의 아름다운 교사 ‘도라’를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되고, 유머와 순수한 열정으로 마침내 도라의 마음을 얻는다. 두 사람은 결혼해 아들 ‘조슈아’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그러나 평화롭던 삶은 제2차 세계대전의 그림자와 함께 무너진다. 나치가 이탈리아를 점령하고, 유대인 박해가 시작되자 귀도와 그의 가족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간다. 도라는 유대인이 아니지만 남편과 아들을 따라 수용소로 자진해 들어간다.
수용소의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귀도는 어린 조슈아에게 세상이 여전히 아름답고, 이것은 단지 '게임'일 뿐이라고 믿게 하려 애쓴다. 그는 군인들의 명령과 상황을 농담으로 바꾸고, 조슈아가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모든 상황을 유쾌하게 포장한다. 조슈아에게 “게임의 우승 상품은 진짜 탱크”라고 말하며, 절망적 현실을 끝까지 희망으로 버틴다. 귀도의 마지막은 비극적이지만, 조슈아는 결국 살아남고, 실제로 탱크를 보며 아버지가 약속했던 ‘게임의 승리’를 기억한다.
절망적 현실 속에서도 인간은 어떻게 존엄성과 희망을 지킬 수 있는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
키워드 : 홀로코스트, 가족애, 희망, 유머, 인간 존엄성, 전쟁
2) 《셰익스피어 인 러브》
“내 삶에는 시가 있어야 해요.
모험도 있어야 하고요.
그리고 사랑이요. 무엇보다 사랑.”
16세기 말, 런던. 젊은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슬럼프에 빠져 있다. 후원자들의 압박 속에서도 그의 창작 열정은 식어가고, 새 희곡 『로미오와 에설, 해적의 딸』은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다. 그러던 중 그는 연극을 사랑하는 귀족 여성 ‘비올라’를 만나게 된다. 여성이 무대에 설 수 없었던 시대, 비올라는 남장을 하고 셰익스피어의 극단에 들어와 주인공 오디션을 본다. 그녀의 연기와 열정은 셰익스피어에게 잊고 있던 영감을 불어넣고, 둘은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사랑에 빠진다. 비올라는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정치적 이유로 다른 남자와 약혼 중이지만, 연극 무대와 셰익스피어와의 사랑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해 간다. 그러나 현실은 둘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다. 연극은 점차 완성되어 가고, 비극적 결말을 향해 치닫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곧 그들의 현실을 반영한다.
결국 비올라는 약혼자와 결혼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셰익스피어는 그녀와의 짧지만 불꽃같은 사랑을 가슴에 새긴 채 작품을 완성한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무대에 오르고, 엘리자베스 여왕까지 관람하게 되며 대성공을 거둡니다.
진정한 예술의 원천은 무엇인가?
사랑과 사회적 규범 사이에서 개인은 어떻게 선택하는가?
키워드 : 연극, 사랑, 창작, 신분 차이, 금지된 사랑, 예술의 열정
3) 《불워스》
“진짜인 건 돈뿐이야.”
영화는 1996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인공 ‘제이 불워시’는 민주당 소속의 상원의원으로, 다년간 정치 경력을 쌓아온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정치적 열정도, 이상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오랫동안 타협과 보신주의 속에 머물러 있었고, 공약보다는 후원 기업과 이익집단의 입맛에 맞춰 움직이는 데 익숙해져 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좋지 않고, 삶에 대한 무력감과 허무함에 휩싸여 있다. 심지어 불워시는 자신의 삶과 정치 인생에 대한 환멸 때문에 자살을 결심한다. 그러나 직접 죽을 용기가 없는 그는 은밀히 암살 청부업자를 고용해 자신을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죽음을 기다리던 불워시는 TV 토론회에 출연하게 된다. 그는 갑자기 대본에 없는 솔직한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여태껏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만 사용해왔던 그가, 갑자기 미국 정치의 부패, 인종차별, 경제적 불평등, 미디어 조작 등을 거침없이 비난한다. 특히 자신이 그동안 기업들의 돈에 휘둘려왔음을 대놓고 인정하면서, 현 시스템에 대한 내부 고발자처럼 행동한다. 관객과 언론은 처음에는 충격을 받지만, 곧 불워시의 솔직한 모습에 열광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불워시는 흑인 커뮤니티와도 가까워지는데, 이때 ‘니나’라는 젊은 흑인 여성은 사회적 약자와 흑인 커뮤니티가 처한 현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며, 그가 가진 정치적 특권과 거리감을 자각하게 만든다.
점점 불워시는 자신을 꾸미지 않고, 실제로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다. 선거 전략가들과 비서들은 그의 돌출 행동에 당황하지만, 오히려 대중은 그에게 열광한다. 불워시는 정치적 계산을 버리고, 인간적이고 직설적인 언어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치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기 시작한다. 그러나 초반에 자신이 고용한 암살 청부업자는 여전히 그를 노리고 있고, 그 사실을 불워시는 까맣게 잊은 채 자신의 새 삶에 몰입해 간다. 영화는 끝내, 그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진심을 말한 대가로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에 대한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진실을 말하면 사람들은 외면할까, 아니면 열광할까?"
"미디어는 정치적 진실을 전달하는가, 아니면 조작된 쇼를 만들어내는가?"
4)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 삶을 가치 있게 살아라.”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 노르망디. 연합군이 상륙 작전을 펼친 직후, 미 육군은 놀라운 명령을 내린다. 전투 중 세 명의 형제를 모두 잃고 홀로 남은 한 병사, 라이언 일병을 안전하게 귀환시키라는 것이다. 라이언의 어머니가 유일하게 남은 아들마저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특수 명령이었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존 밀러 대위가 이끄는 8명의 소규모 분대가 꾸려진다.
밀러 대위와 그의 부하들은 죽음이 도사리는 전선 한가운데에서 라이언을 찾아 위험천만한 여정을 떠난다. 각각 다른 배경과 성격을 지닌 이들은 처음엔 한 병사를 위해 모두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명령에 의구심을 품는다. 하지만 여정을 거듭하며 전쟁의 비인간성과 개인적 신념, 동료애 사이에서 갈등하고, 스스로 어떤 가치를 지키며 싸워야 하는지를 깨닫기 시작한다. 마침내 라이언을 찾아낸 순간, 밀러와 분대는 그를 지키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끝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지만, 밀러 대위는 죽기 직전 라이언에게 "네가 이 삶을 가치 있게 살아라"는 말을 남긴다. 전쟁이 남긴 상처와 희생 속에서, 영화는 한 사람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희생의 의미를 깊이 있게 담아낸다.
개인의 삶은 공동체 전체의 희생을 통해 구할 가치가 있는가?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인간성은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가?
키워드 : 전쟁, 희생, 인간성, 명령과 신념, 형제애, 동료애, 존엄성
5) 《트루먼 쇼》
“우리는 주어진 세계를 현실로 받아들여. 그게 전부야.”
‘트루먼 버뱅크’ 는 평범한 보험회사 직원으로, 조용하고 아름다운 해안 도시 시헤이븐에서 태어나 자라며 살고 있다. 그는 착한 아내와 친한 친구, 안정된 직장과 이웃을 두고 그저 일상을 살아가지만, 어딘가 모르게 삶이 반복되고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트루먼은 자신이 사실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거대한 TV 쇼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트루먼 쇼’라는 프로그램은 그가 태어난 순간부터 24시간 생방송되고 있으며, 그의 주변 모든 사람들—가족, 친구, 동료, 심지어 도시 전체—모두가 배우들이다. 시헤이븐 자체도 거대한 세트장이며, 그의 삶은 제작자 ‘크리스토프’의 통제 아래 철저히 연출되고 있다. 트루먼이 이 사실을 모르게 하기 위해, 그의 어린 시절엔 아버지가 바다에서 익사하는 사건까지 꾸며진다. 이는 트루먼에게 바다에 대한 공포를 심어줘, 섬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장치였다.
어느 날, 트루먼은 몇 가지 이상한 점들을 눈치채기 시작한다. 하늘에서 스튜디오 조명이 떨어진다거나, 라디오에서 자신의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걸 듣게 되거나, 죽었던 아버지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도 한다. 또한, 대학 시절 짧게 스쳐간 여성 ‘실비아’가 그에게 “이 세계는 가짜”라는 암시를 남기고 사라진 기억도 지워지지 않는다. 점점 삶에 의문을 품은 트루먼은 자신이 갇혀 있다는 의심을 키워가고, 아내와 친구에게도 불신을 품는다. 결국 그는 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배를 타고 섬을 떠나려 시도한다. 쇼 제작진은 인공 폭풍까지 일으키며 막으려 하지만, 트루먼은 끝내 세트장 외벽에 도달한다. 거대한 스튜디오의 끝, ‘진짜 세계’로 나가는 문 앞에 선 트루먼 앞에 크리스토프가 나타나, 자신이 트루먼의 삶을 모두 설계해왔음을 고백한다. 크리스토프는 "여기가 네가 있을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곳"이라고 마지막 설득을 하지만 트루먼은 자유를 선택해 문 밖으로 나간다.
자유 의지란 무엇이며,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인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삶과 프라이버시는 어떻게 조작되고 소비되는가?
키워드 : 리얼리티 쇼, 자유 의지, 조작된 삶, 자아 발견, 미디어 비판
3. 제71회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작 및 선정 이유
각본상 수상작 :
《셰익스피어 인 러브》 마크 노먼, 톰 스토퍼드
《셰익스피어 인 러브》 각본상 선정 이유 :
역사적 인물인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하며, 그의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이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독창적인 상상력을 펼쳐냈다. 단순한 전기 영화가 아닌, 셰익스피어 본인의 사랑과 창작의 고통, 그리고 그 시대의 억압된 사회적 규범을 교묘하게 엮어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됐다.
이 각본은 실제 역사와 허구적 상상력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연극과 현실이 서로를 비추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극 구조 속에서 셰익스피어와 비올라의 사랑 이야기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 서사와 맞물리며, 관객에게 예술과 사랑의 본질적 관계를 되묻는다는 점에서 뛰어난 완성도를 보였다. 대사 하나하나에 문학적 세련미와 위트를 담아, 셰익스피어 시대의 언어유희와 현대적 감각을 모두 살렸다는 점도 심사위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