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작품, 인간 내면의 복잡한 심리와 사회적 관계를 통해 존재와 정체성을 묻는 작품, 그리고 예상치 못한 결말로 관객의 사고를 뒤흔드는 작품까지. 이번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작들은 모두 기존 영화 문법을 뛰어넘는 대담한 서사와 독창적 시각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각기 다른 장르와 스타일로 인간 존재, 사랑, 죽음, 운명이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제72회 각본상 후보작들과 오스카 영예를 안은 수상작을 만나본다.
1. 각본상 후보작 및 각본가 소개
《식스 센스》 – 각본: M. 나이트 샤말란
《존 말코비치 되기》 – 각본: 찰리 카우프먼
《매그놀리아》 – 각본: 폴 토머스 앤더슨
《아메리칸 뷰티》 – 각본: 앨런 볼
《뒤죽박죽》 – 각본: 마이크 리
2. 각본상 후보작 정보 : 줄거리, 메시지, 키워드.
1) 《식스 센스》
“나는 죽은 사람들이 보여요.”
필라델피아의 한 겨울, 아동 심리학자 ‘말콤 크로우’ 박사는 자신의 명성과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올해의 의사상’을 수상한 말콤은 아내 ‘애나’와 함께 집에서 축하를 나는데, 과거 환자였던 빈센트 그레이가 나타난다. 그는 어릴 적 말콤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오랜 세월 동안 분노와 고통에 시달렸다. 빈센트는 말콤을 총으로 쏘고, 자신도 자살한다. 이 사건은 말콤에게 큰 상처와 죄책감을 남긴다.
몇 달 후, 그는 죄책감과 실패감 속에서 또 다른 문제아인 소년 ‘콜 시어’를 맡게 된다. 콜은 겉보기에는 조용한 소년이지만, 내면 깊숙이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보인다는 무서운 비밀을 안고 살아간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걱정 속에서 괴로워한다. 처음엔 콜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던 말콤은, 점차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깨닫고 콜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 역시 치유받기 시작한다.
콜은 죽은 이들이 남긴 미처 전하지 못한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이들을 해방시키고, 동시에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해간다. 말콤도 자신의 문제도 해결하기 위해 아내 애나와 대화를 시도하고, 충격적 진실을 마주 한다.
두려움과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키워드 : 초자연현상, 죽음, 소통, 용기, 트라우마, 구원, 반전, 영혼.
2) 《존 말코비치 되기》
“누군가의 머릿속에 들어가 15분 동안 산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인형사 ‘크레이그 슈워츠’는 뉴욕에서 무명 인형극 배우로 살아가며, 경제적 어려움과 자신의 예술적 열망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그는 아내 ‘롯테’와 함께 살고 있지만, 부부 관계는 점차 소원해져 가고 있다. 어느 날 크레이그는 7과 1/2층이라는 기묘한 층에 위치한 회사에서 서류 정리원으로 취직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동료 ‘맥신’에게 매혹되지만, 그녀는 그에게 냉담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벽장 뒤에서 발견한 비밀 통로를 통해, 그는 유명 배우 ‘존 말코비치’의 머릿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발견한다. 이 통로를 통해 15분 동안 말코비치의 시각과 감각으로 세상을 경험한 후, 다시 원래 세계로 되돌아오게 된다.
크레이그는 이 놀라운 경험을 상업화하기로 결심하고, 맥신과 함께 사람들에게 ‘말코비치 체험’을 유료로 제공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이 체험에 열광하고, 크레이그와 롯테, 맥신, 그리고 말코비치 본인까지 이 상황 속에서 정체성 혼란과 욕망, 욕망의 충돌을 겪게 된다. 크레이그는 말코비치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하고, 결국 스스로 말코비치가 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타인의 삶을 경험하고 싶다는 욕망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진정한 자아란 무엇인가?
키워드 : 정체성, 욕망, 초현실, 타인의 시선, 자아 상실
3) 《매그놀리아》
“우리는 과거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과거는 우리를 따라온다.”
로스앤젤레스 샌퍼넌도 밸리. 그곳에서 살아가는 여러 인물들의 삶은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흘러가지만, 하나의 거대한 서사 속에서 얽혀 있다. 어린 시절 퀴즈쇼 스타였던 ‘도니’는 성인이 된 후에도 과거의 명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간다. 현재 퀴즈쇼에 출연 중인 천재 소년 ‘스탠리’는 아버지의 강압적인 기대 속에서 스트레스를 겪으며,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짊어진 책임감에 눌려 있다. 죽음을 앞둔 방송국 사장 ‘얼 패트리지’와 그의 간병인 ‘필립’, 그리고 얼의 간호를 위해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지만 내면은 갈등으로 가득 찬 그의 젊은 아내 ‘린다’가 있다. 얼의 아들 ‘프랭크’는 TV 인생 코치로 유명하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버려졌던 상처를 마음속에 숨긴 채 살아간다.
또한, 외로운 경찰 ‘짐 쿠링’과 약물 중독으로 방황하는 ‘클라우디아’,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이 인생의 고통과 후회, 화해를 향한 욕망을 품고 있다. 그들의 일상이 우연히 겹치고 충돌하면서, 삶의 불확실성과 우연, 그리고 용서가 시작된다. 영화의 마지막 하늘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개구리 비는 인과율을 벗어난 인생의 기묘함을 상징적으로 그려내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우리의 삶에서 우연과 운명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상처 입은 인간들이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인가?
키워드 : 우연, 인과율, 가족, 상처, 용서, 운명, 인간관계, 화해
4) 《아메리칸 뷰티》
“이 세상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아서, 내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레스터 버냄’은 평범한 미국 교외의 가정에서 살아가는 중년 남성이다. 광고회사에 다니며 안정된 직장을 가졌지만, 삶에 대한 무기력과 무관심 속에서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다. 아내 ‘캐롤린’은 외형적으로는 완벽한 주부이자 성공을 지향하는 여성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불안과 공허가 가득하다. 딸 ‘제인’은 사춘기 특유의 반항심과 부모에 대한 실망감으로 가족과 거리감을 두고 살아간다.
레스터는 어느 날, 딸의 친구인 ‘앤젤라’를 처음 본 순간 강렬한 욕망과 함께 잊고 있었던 삶의 생기를 느끼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과감히 직장을 그만두고, 잃어버렸던 자아를 찾기 위해 몸과 정신을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한편, 이웃집 청년 ‘리키’는 폭력적이고 보수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을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비디오 카메라에 주변의 아름다움과 진실을 담아내고 있다. 리키는 제인과 가까워지며 두 사람은 각자의 가정에서 느끼던 억압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위안을 얻는다. 각 인물들이 가진 욕망, 상처, 위선, 사랑이 충돌하는 가운데,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통찰을 그려낸다. 평범해 보이는 교외의 일상이 사실은 수많은 감정과 억압, 해방을 향한 열망으로 뒤엉켜 있음을 보여준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무엇인가?
우리는 사회적 틀 속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속이며 살아가고 있는가?
성공과 아름다움 뒤에 감춰진 인간 내면의 진실을 직시하라.
사회적 위선과 억압을 벗어나, 순간의 삶 속에서 진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가.
키워드 : 중산층 가정, 교외 사회, 위선, 자아찾기, 욕망, 자유, 죽음, 아름다움
5) 《뒤죽박죽 (Topsy-Turvy)》
"삶이란 본래 불안정한 비즈니스죠."
19세기 말 런던을 배경으로, 당대 최고의 오페라 콤비였던 극작가 ‘윌리엄 S. 길버트’와 작곡가 ‘아서 설리번’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 작품을 만들어오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창작에 대한 관점 차이로 인해 관계에 균열이 생긴 상태다. 설리번은 자신이 계속 가벼운 희극 오페라만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 점점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그는 더 진지하고 심오한 음악을 작곡하고 싶어 하지만, 길버트는 언제나 비슷한 풍자적 톤과 익숙한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을 만든다. 하지만 길버트 역시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고갈과 대중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긴장감 속에서 두 사람은 다음 작품 제작을 두고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 설리번은 건강 문제까지 겹쳐 당분간 작업에서 손을 떼고 싶어 하고, 길버트는 오랫동안 함께해 온 파트너가 등을 돌리려 하자 실망과 좌절에 빠진다. 주변 인물들 역시 각자의 고민을 안고 있다. 극장의 배우들은 늘 같은 패턴 속에서 반복되는 공연에 지치고, 스태프들은 창작자들의 불화로 인해 향후 공연 일정이 불투명해질까 우려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길버트는 우연히 방문한 일본 전시회에서 강렬한 영감을 받게 된다. 전시회에서 마주한 일본의 색채, 의상, 음악, 전통 풍습은 길버트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그동안 머물러 있던 창작의 한계를 넘어설 단서를 제공한다. 그는 바로 일본을 배경으로 한 새로운 오페라를 구상하고, 이를 <The Mikado> 라는 제목으로 발전시킨다. 이 작품은 일본이라는 이국적 무대를 활용하면서도, 특유의 영국 사회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다. 길버트는 설리번에게 새로운 대본을 보여주고, 설리번 역시 흥미를 느끼며 다시 협업을 시작한다. 이후 영화는 본격적으로 <The Mikado>의 제작 과정을 매우 세밀하게 따라간다. 배우들의 리허설, 세트 디자인, 의상 제작, 분장, 무대 동선까지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현실감 있게 그려진다. 그 과정 속에서 각각의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사소하지만 인간적인 면모들도 드러난다. 어떤 배우는 자신의 출연 분량에 대해 불안해하고, 어떤 이는 무대 위에서는 화려하지만 무대 밖에서는 외로움을 견디고 있다. 또한, 당시 영국 사회의 계급 문제, 여성의 지위, 노동 환경 등이 자연스럽게 극장이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비춰진다.
길버트와 설리번의 관계는 여전히 완벽하게 회복되지는 않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의 여지를 조금씩 찾아간다. <The Mikado>는 개막과 동시에 대성공을 거두며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는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작품의 성공으로 이야기를 마무리짓지 않는다. 오히려 성공의 이면에서 예술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길버트와 설리번이 여전히 안고 있는 외로움, 고뇌, 창작자의 책임을 조용히 비춘다.
외부의 인정과 내면의 충만함은 과연 일치하는가?
예술, 연극,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진짜라고 부를 수 있을까?
3. 제72회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작 및 선정 이유
각본상 수상작 :
《아메리칸 뷰티》 앨런 볼
《아메리칸 뷰티》 각본상 선정 이유 :
미국 교외 중산층의 평범한 가족을 통해, 현대인의 공허함, 위선, 억압된 욕망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특히 주인공 레스터 버냄이 겪는 중년의 위기와 자아 찾기는 개인적 문제를 넘어, 현대 사회가 강요하는 성공과 정상성이라는 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복합적인 심리와 인간관계를 촘촘하게 짜내어,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내면은 불안과 좌절로 가득한 인물들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특히 상징적 장면과 대사들을 통해 관객에게 진정한 아름다움과 자유란 무엇인지 깊이 있는 질문을 던졌다.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담은 각본의 힘이었다. 다양한 인종과 계층, 욕망과 상처를 가진 인물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보편적인 인간 감정을 현실적이면서도 시적으로 풀어낸 점이 높이 평가됐다. 완성도 높은 캐릭터 구성, 탁월한 대사, 상징적인 서사로 각본 부문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