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제 74회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작들은 시간과 기억, 계급과 욕망, 고통과 구원, 가족과 정체성을 다루며 다양한 장르적 실험과 감정적 깊이를 선보인 작품들이 후보에 올랐다. 단순한 사건 전개를 넘어, 인물 내면과 사회 구조를 예리하게 파고든 후보작을 소개하고, 복합적인 인간 군상의 심리를 촘촘히 직조해냈다는 평가를 받은 수상작을 만나본다.
1. 각본상 후보작, 각본가 소개
《아멜리에》 기욤 로랑, 장-피에르 주네
《메멘토》 크리스토퍼 놀란
《고스포드 파크》 줄리안 펠로우즈
《몬스터 볼》 밀로 애디카, 윌 로코스
《로얄 테넌바움》 웨스 앤더슨, 오언 윌슨
2. 각본상 후보작 정보, 줄거리, 메세지, 키워드.
1) 《아멜리에》
“행복은 아주 작은 틈새에 숨어 있다. 문제는, 누가 먼저 그것을 발견하느냐야.”
고요하고 낭만적인 파리 몽마르트르, ‘아멜리 푸랑’은 유년 시절부터 부모의 지나친 보호 아래 자라며 외로움과 상상력 속에 갇혀 있었다. 사회와 감정에 서툴지만, 타인에 대한 따뜻한 호기심을 가진 그녀는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품고 있다.
어느 날, 자신의 아파트 벽 안에 숨겨진 어린 시절 장난감 상자를 발견한 아멜리는 그것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그 작은 선행을 시작으로, 그녀는 주변 이웃들의 삶을 몰래 엿보고 조용히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불행한 식료품점 점원, 괴팍한 화가, 외로운 카페 웨이트리스 등, 그녀는 각자에게 맞는 방법으로 행복을 선물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사랑 앞에서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 기묘한 사진 수집가 ‘니노’를 알게 되지만, 직설적으로 다가가는 대신 복잡한 장난과 숨바꼭질로 마음을 전하려 한다. 아멜리는 결국 자신 또한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직접 다가간다.
사랑과 용기는 어떻게 서로를 완성시키는가?
키워드 : 외로움, 따뜻한 공동체, 상상력, 사랑, 용기, 파리
2) 《메멘토》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누구인가?”
‘레너드 셸비’는 아내가 살해된 이후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10분 이상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지 못하는 그의 삶은 혼돈 그 자체다. 레너드는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메모를 남기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고, 심지어 중요한 사실은 자신의 몸에 문신으로 새긴다. 그가 반복적으로 각인시키는 한 가지 목표는, 바로 아내를 죽인 '존 G'를 찾아 복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기억이 지속되지 않는 자신의의 상태 때문에, 자신이 믿고 있는 정보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때 ‘나탈리’라는 여성이 나타난다. 그녀는 친절하고 동정심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거슬러 올라가면서, 나탈리가 레너드의 상태를 철저히 이용하고 있음이 보여진다. 그녀는 자신의 애인을 잃었고, 그 복수심을 레너드를 통해 해소하려 한다. 레너드는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채, 그녀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한다. 깊은 외로움에 그녀도 레너드에게서 어딘가 모르게 위안을 찾고 있다.
한편, 경찰 ‘테디’는 레너드와 가장 가까이에서 '존 G'를 찾는데 도움을 주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정체도 모호해진다. 그는 레너드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하려 하고, 결국 레너드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고백한다. "넌 이미 아내를 죽인 남자를 죽였어. 그 후로 계속해서 다른 '존 G'를 찾아다니고 있어." 이 순간, 레너드의 세계는 무너진다. 자신이 집착해온 복수가 이미 끝났고, 자신이 추적해온 모든 것이 허상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공허함을 남긴다.
결국 레너드는 테디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진실을 외면한다. 그는 스스로의 사진에 테디를 '거짓말쟁이'라고 기록하고 그를 살해하고, 다음 복수 대상을 설정한다. 기억은 그에게 신뢰할 수 없는 것이고, 자신이 믿고 싶은 진실만이 남아있다. 그가 남긴 메모와 사진, 문신은 이제 더 이상 진실을 기록하는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기만의 도구로 변해버린다. 레너드는 진실보다도 '살아갈 이유'가 더 중요하다. 기억은 흐릿해지고, 그의 삶은 자신이 만든 복수의 루프 속에서 반복된다.
우리는 진실을 믿으며 살아가는가?
아니면 우리가 믿고 싶은 것만을 선택하며 살아가는가?
기억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갈수 있는가.
키워드 : 기억, 복수, 정체성, 자기기만, 시간 왜곡, 퍼즐
3) 《고스포드 파크》
“누구나 비밀을 갖고 있다. 다만 어떤 비밀은 목숨값이 될 뿐이다.”
1932년, 영국의 외딴 시골 저택 고스포드 파크. 부유한 귀족 윌리엄 ‘맥코드’ 경은 매년 열리는 사냥 파티를 주최한다. 귀족들과 그들의 하인이 모여든 파티는 겉으로는 격식과 품위를 갖춘 사교 모임처럼 보이지만, 계급적 긴장과 얽힌 인간관계, 위선과 불만이 팽팽히 흐른다.
귀족들은 서로의 체면과 권위를 지키기 위해 조심스럽게 대화를 주고받고, 하인들은 지하에서 철저한 위계 속에서 또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하인들은 귀족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냥 파티가 무르익어갈 즈음, 저택의 주인 맥코드 경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경찰이 도착해 수사를 벌이지만, 귀족과 하인 모두 비밀과 알리바이, 감춰진 욕망을 품고 있어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진다. 오래된 분노와 복수심 얽히고설킨 역사와 감정속에서 진실이 드러나며 저택은 인간 군상의 축소판으로 변모한다.
사회적 계급이 인간 본성을 어떻게 왜곡시키는가?
권력과 위선은 언제 붕괴하는가?
키워드 : 계급사회, 위선, 억압, 살인, 권력, 인간 군상
4) 《몬스터 볼》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누가 그것을 껴안을 뿐이다.”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작은 마을. 백인 교도관 ‘행크’는 사형 집행을 담당하며 살아간다. 그는 인종차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감정 표현이 서툴고 인간관계에 무감각한 남자다. 아들 ‘소니’ 역시 교도관으로 일하지만, 아버지의 기대와 억압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반면, 흑인 여성 ‘레티샤’는 가난과 남편의 사형 집행이라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며 절망의 끝에 몰린 그녀는, 어느 밤 아들을 사고로 잃고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행크와 레티샤는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던 채 고통 속에 살아가다 우연히 마주치고, 서로의 상처를 알아본다. 인종적 편견, 고통, 상실을 넘어서, 두 사람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이해에 다가선다. 사랑이라기보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기대는 이들의 관계는, 절망 속에서도 작고 미약한 희망을 품는다.
상처받은 두 사람은 어떻게 서로를 구원할 수 있는가?
편견과 고통을 넘어서는 인간성은 무엇인가?
키워드 : 상처, 구원, 인종, 고통, 인간성, 용서
5) 《로얄 테넌바움》
“우린 모두 실패작이었지만, 가족이라는 건 그런 것쯤은 품어주는 거야.”
‘로얄 테넌바움’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의 중심에 있었던 한 남자였다. 변호사로 성공했고, 고상하고 지적인 아내 ‘에텔린’과, 천재적인 세 자녀를 두고 있었다. ‘차스’, ‘리치’, ‘마고’는 각각 사업, 스포츠, 문학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어린 시절부터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그들의 가족은 완벽해 보였지만, 로얄은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인 아버지였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의 상처를 안은 채 성장하게 된다. 결국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로얄은 오랜 세월 가족과 단절된 채 외롭게 살아간다. 아내 에텔린은 홀로 세 아이를 키워냈고, 현재는 다른 남성 ‘헨리’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이때, 로얄은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거짓말을 통해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들의 감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차스는 어릴 때부터 비즈니스 천재로 불렸지만,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강박적으로 두 아들만을 지키려 한다. 그는 아버지 로얄에게 특히 깊은 불신과 분노를 품고 있다. 리치는 어린 시절 테니스 스타였지만, 경기 도중 갑자기 무너져버린 후 방황한다. 그는 오랜 시간 마고를 사랑해왔지만, 그 감정을 마음 깊이 숨긴 채 살아간다. 마고는 입양된 딸로, 어릴 적부터 주목받았던 극작가였으나 지금은 정체된 삶을 살고 있다. 그녀 역시 아버지의 무관심과 가족 내 소외감을 품고 있다.
로얄이 돌아오면서, 억눌렸던 감정들은 다시금 표면 위로 떠오른다. 로얄은 가족의 신뢰를 얻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척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본성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준다. 결국 그의 거짓말이 발각되면서, 가족 구성원들은 자신이 어떤 감정 속에 얽혀 있었는지, 무엇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직면하게 된다. 로얄 역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실패했던 과거를 뒤늦게 되돌아보고, 진심으로 가족들과 화해하고 싶어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보여주는 작은 변화와 헌신은 점차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로얄은 처음으로 가족을 위해 진심을 다해 행동하고, 그의 장례식에서 각자 남겨졌던 상처와 오해들은 서서히 봉합된다. 차스는 아이들과 함께 삶의 균형을 찾고, 리치와 마고는 서로의 감정을 받아들이며 나아간다. 마고는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리를 찾게 된다.
가족은 실패와 상처를 어떻게 품어낼 수 있는가?
인간은 어ᄄᅠᇂ게 서로를 이해하고, 과거의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가.
키워드 : 가족, 실패, 용서, 성장, 두 번째 기회, 뉴욕, 죽음. 아버지의 부재.
3. 제 74회 각본상 수상작 및 수상작 선정 이유
각본상 수상작 :
《고스포드 파크》 줄리안 펠로우즈
《고스포드 파크》 각본상 선정 이유
《고스포드 파크》는 영국 계급 사회의 위선과 인간 욕망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각본으로 찬사를 받았다. 줄수십 명의 등장인물 각각에게 뚜렷한 개성과 심리를 부여하며, 귀족과 하인의 관계, 억압과 권력의 작동 방식을 촘촘하게 직조해냈다.
계급 사회의 정교한 위계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욕망과 상처, 허영과 폭발적 분노를 교차적으로 배치하며 긴장감을 조성했다. 단순한 사건 해결이 아닌, 인간 내면의 복잡함과 사회적 구조를 풀어낸 점에서 각본의 완성도와 깊이가 높게 평가되었고, 이로써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