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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작품상 리뷰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 2010) 침묵을 뚫고 울리는 한 왕의 용기

by 장미로 태어난 오스카 2025. 12. 31.

 

킹스스피치
킹스스피치

 

 

왕이 말을 더듬는다. 사람들 앞에서 한 마디조차 떨림 없이 말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는 전쟁을 앞둔 나라의 왕이다. 《킹스 스피치》는 화려한 전투도, 정치적 음모도 없다. 하지만 말 한 마디, 목소리 하나에 모든 감정이 실려 있는 아주 조용하고도 뜨거운 영화다.

불완전한 인간, 불가능한 책임

조지 6세, 그는 원래 왕이 될 생각이 없던 인물이다. 형 에드워드 8세가 왕위를 포기하면서 억지로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문제는 그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말더듬.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던 시절, 지도자의 연설은 단순한 말이 아닌 국가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 앞에 서면 혀가 꼬이고, 단어들이 입속에서 부서져 나간다. 민망함, 수치심, 무력감이 동시에 밀려드는 장면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사람들 앞에서 말이 안 나오는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

목소리를 되찾는 여정

그는 전문 언어치료사 리오나 헬로그를 만난다. 리오나는 형식적이고 권위적인 방식 대신, 인간 대 인간으로 접근한다. 이 영화가 감동적인 이유는, 이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치료를 넘어선 ‘신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신분과 성격, 방식이 다르다. 왕은 무뚝뚝하고 자존심이 세고, 치료사는 거리낌 없이 반말도 한다. 하지만 서로를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조지 6세는 단순히 ‘말’을 넘어서 ‘자신’을 찾게 된다. 이들의 대화는 대부분 단순한 장면인데, 그 안에 담긴 감정의 층위가 너무나 풍부하다.

소리 없는 고통, 그리고 용기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말더듬’이라는 장애가 얼마나 외로운 것인지 체감했다. 주인공은 단지 말이 느린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 고통받는다. 사람들 앞에 설 때마다 그의 손끝이 떨리고, 입술이 멈춘다. 하지만 가장 아픈 것은, 그의 그 어떤 ‘진심’도 듣는 이에게 제대로 닿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침묵 속에서 그는 무너져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리오나의 격려와 함께 훈련을 반복하면서 점점 달라지는 모습은 말 그대로 ‘성장’의 과정이다. 단순히 말을 잘하게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결점을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믿게 되는 과정.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고요한 연기, 뜨거운 울림

콜린 퍼스는 정말 대단했다. 그의 눈빛, 미묘한 표정, 억눌린 감정들이 화면 너머로 진짜로 전해졌다. 말을 더듬는 연기를 하면서도 감정선을 완벽히 유지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헬로그 역을 맡은 제프리 러시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관객이 바라보는 시선이자, 조지 6세가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한다. 둘의 케미스트리는 연극처럼 밀도 높고,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아버지 같다.

이 영화는 고통을 과장하거나 드라마틱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묵직하게, 천천히 쌓아간다. 그 속에서 감정이 차오르고, 마지막 연설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있었다.

마지막 연설, 그리고 진짜 목소리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전쟁을 앞두고 하는 라디오 연설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단순히 왕의 연설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두려움을 이겨낸 순간이라는 걸 느꼈다.

그는 완벽하게 말을 하지 못한다. 여전히 약간의 더듬거림이 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누구보다도 힘 있고 진실되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진심이면 된다고, 말하는 듯한 순간이었다.

정리하며 : 약함이 강함이 되는 순간

《킹스 스피치》는 단순한 전기 영화나 왕실 드라마가 아니다. 이건 한 사람이 자신의 결점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가 곁에서 손을 내밀어 줄 때, 그 변화가 어떻게 가능해지는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누군가가 말이 서툴더라도, 그 속에 얼마나 큰 용기가 담겨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킹스 스피치》는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깊게, 마음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