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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작품상 리뷰

[오펜하이머(Oppenheimer, 2024)] 리뷰 : 우리는 무슨 선택을 하고, 어떻게 책임지나

by 장미로 태어난 오스카 2025. 12. 3.

오펜하이머 포스터
오펜하이머 포스터

2024년 아카데미 작품상 : 오펜하이머(Oppenheimer, 2023)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오펜하이머는 단순한 인물 전기 영화가 아니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건 과학도, 전쟁도 아닌, 인간 내면의 무게였다. 그리고 그 무게는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어깨 위로 함께 내려앉았다.

 

1. 경계에 선 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

이 영화의 핵심은 '무엇을 발명했는가'가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사람이 어떤 생각을 했는가'에 있다. 오펜하이머는 단순히 천재 과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기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끝없이 충돌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아이디어를 현실로 바꾸는 능력이 있었고, 그 현실은 이후 세상의 판도를 바꾸었다.

그런데 그는 단 한 번도 가볍게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았고, 그 결과에 압도당해간다. 영화는 그가 실험을 성공시킨 과학자이자, 동시에 스스로 만든 현실에 갇힌 인간이라는 점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2. 역사적 무게를 이끈 연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서사와 감정의 밀도를 극대화했다. 흑백과 컬러의 전환, 시간의 교차, 그리고 실험 장면에서의 정적은 모두 의도된 설계처럼 느껴진다. 핵실험이 성공하는 순간, 관객은 예상치 못한 정적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연출이 아니라,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복합적인 감정—두려움, 환희, 공허—를 말 없는 공기로 전한다.

놀란은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감정을 끌어올린다. 영화의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심리적 긴장감은 꾸준히 누적된다. 그 덕분에 러닝타임이 길다는 느낌 없이 몰입할 수 있었다.

 

3. 나는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면서 계속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만든 것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단지 오펜하이머만의 고민이 아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도 선택하고, 만들고, 공유하면서 늘 무언가를 세상에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까지도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오펜하이머는 결국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보았고,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세상은 그의 존재를 영웅과 위험으로 동시에 바라보았고, 그는 그 복잡한 시선 안에서 묵묵히 존재했다. 그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4. 진짜 힘은 침묵 속에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예상과 달리 폭탄이 터지는 장면이 아니었다. 그 후에 찾아오는 침묵이었다.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멍하니 있는 오펜하이머의 얼굴. 말하지 않지만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눈빛. 그 장면에서 감정이 울컥했다. 그가 만든 것은 세상을 바꿨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을 바꿔놓았다.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는 엄청난 사건을 담고 있으면서도, 한 사람의 내면을 이토록 세밀하게 따라간다는 데 있다. 거대한 역사적 사실보다, 그걸 만든 사람의 감정에 더 오래 머물게 된다.

 

5. 정리하며

《오펜하이머》는 단지 전기영화나 과학 드라마로 규정할 수 없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인간의 이야기이고, 책임과 선택, 그에 따르는 결과를 다룬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복잡한 이야기를 놀라운 집중력으로 풀어냈고, 킬리언 머피는 그 모든 감정을 품은 얼굴로 연기해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지금 어떤 것을 만들고, 무엇을 세상에 남기고 있는가?' 세상은 늘 결과만을 보지만, 그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의 복잡한 감정과 선택을 이해하려는 태도도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오펜하이머》는 오래 기억에 남을 영화다. 단지 작품상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질문이 내 삶에도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