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제95회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작들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대의 불안과 인간 내면을 깊이 있게 탐구했다. 가족, 정체성, 권력, 사회 구조 등 다양한 주제를 독창적인 스토리로 풀어내며 주목받았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각 후보작의 줄거리와 키워드, 그리고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유를 살펴본다.
1. 각본상 후보작, 각본가 소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다니엘 콴, 다니엘 샤이너트
《이니셰린의 밴시》 마틴 맥도나
《더 파벨만스》 스티븐 스필버그, 토니 쿠쉬너
《타르》 토드 필드
《슬픔의 삼각형》 루벤 외스틀룬드
2. 각본상 후보작 정보 : 줄거리, 키워드
1)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줄거리, 감상평
“너와 함께라면, 이 엉망진창의 우주도 괜찮아.”
“다른 삶이 있다면, 당신과 함께 세탁소도 하고 세금도 내면서 살고 싶어”
‘이블린’은 남편 ‘웨이먼드’와 함께 미국에서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세금 문제로 국세청에 불려 가고,, 남편과의 관계는 소원해졌으며, 딸 조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받지 못해 갈등 중이다. 게다가 병든 아버지까지 돌봐야 하는 현실 속에서, 이블린의 삶은 산산조각 난 듯 혼란스럽다. 그러던 중, 국세청에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갑작스럽게 남편의 다른 버전, '알파 웨이먼드'가 등장한다. 그는 이블린에게 자신이 다른 우주에서 왔고, 이블린이 수많은 평행우주를 구할 열쇠임을 알려준다. 이블린이 사는 이 세계와는 다른 수많은 버전의 이블린들이 존재하며, 그중 최고로 강력한 악당 ‘투파키’가 모든 우주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파 웨이먼드는 이블린에게 다른 세계의 자신들과 연결해 능력을 흡수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이블린은 다양한 우주 속에서 셰프, 무술가, 영화배우 등 자신이 될 수 있었던 무한한 가능성을 경험한다. 하지만 투파키가 바로 자신의 딸 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단순한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무수한 선택의 무게가 핵심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투파키는 모든 가능성과 결과를 한꺼번에 인식하면서 아무 의미도 없는 세계에 압도당해 버린 인물이다. 그녀가 만든 "베이글"은 우주 전체를 빨아들이는 허무의 상징이며, 그 안에 모든 것과 아무것도 없는 것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이블린은 다른 세계의 자신들과 연결되며 점차 깨닫는다.
모든 혼돈과 무한한 우주 속에서, 모든 가능성, 모든 선택, 모든 실수 속에서도, 자신의 삶이 특별하고 의미 있는 이유는, 지금 눈앞에 있는 가족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작고 소중한 순간들, 매 순간 선택하는 태도 때문이라는 것을. 그녀는 조이에게 조건 없는 사랑과 이해를 전하며, 조이가 스스로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도록 손을 내민다. 결국 이블린은 세금 문제나 가족 문제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까지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감상평 :
우리는 다양한 선택과 가능성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어떻게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겉으로 보기엔 정신없는 멀티버스 액션 같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너무도 현실적이고 따뜻하다. 나 역시 살아가면서 ‘지금 이 선택이 맞을까’ 수없이 고민해왔기 때문에, 에벌린이 무수한 가능성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깊게 와닿았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우리 모두가 겪는 작고 사소한 삶의 문제들을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시켜 보여준다. 그래서 더 큰 울림이 있다. 어쩌면 우리 삶은 거창하지 않지만, 매일의 선택과 관계 속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모험일지도 모른다.
다중우주라는 상상력 가득한 배경 속에서도 영화의 중심은 결국 '가족과 삶의 태도'에 있다. 이민자의 현실, 세대 간의 갈등, 관계의 회복까지 복합적인 주제를 놀랍도록 유기적으로 엮어냈다.
2) 《이니셰린의 밴시》
“어떤 사람들은 그냥 행복해질 수 없는 거야”
1923년, 아일랜드 내전이 한창이던 때, 외딴 섬 이니셰린. 작은 공동체 속에서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 '파우릭'은 오랜 친구 '콜름'이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갑자기 우정을 끝내겠다고 선언하자 상처받는다. 착하고 순진한 성격의 파우릭은 계속해서 콜름에게 이유를 묻고, 오해가 있었는지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콜름은 너는 지루하다며, 더 이상 너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이제는 음악과 예술에 집중하고 싶다고 단호하고 냉정하게 말한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파우릭에게 동생 '시오반'과 친구 '도미닉' 등 주변 사람들은 콜름을 놔주라고 조언하지만, 파우릭은 계속해서 콜름에게 다가가고, 어떻게든 예전의 관계를 되돌리려 한다. 그러자 콜름은 극단적인 경고를 한다. 파우릭이 또 자신에게 말을 걸면, 자신은 바이올린 연주에 필요한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버리겠다는 것이다.
파우릭은 믿지 않지만, 콜름은 자신의 경고대로 실제로 손가락을 잘라버리며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파우릭은 더 이상 예전의 순진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끝내 콜름에게 자신도 더 이상 예전처럼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고, 이제는 갈등을 끝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섬 너머에서는 내전의 포성이 들려오고, 이니셰린이라는 작은 섬에서는 인간관계의 균열과 고립, 상실이 조용히 퍼져나간다.
감상평 :
인간은 서로에게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가.
우리는 왜 갑자기 관계를 끝내는가?
죽음은 피할 수 없는가? 그밴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영화는 관계가 끊기는 순간, 그 상처가 어떻게 파장을 일으키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콜름과 파우릭의 갈등은 단순한 우정의 파탄을 넘어, 인간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된다. 섬의 고요함과 내전의 배경,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두 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긴장감이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다. 특히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나에게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고요하지만 잔인하게, 이 영화는 사람 사이의 단절을 조용히 해부한다.
작은 섬이라는 폐쇄적 공간과 아일랜드 내전이라는 배경이 겹쳐져, 인간 관계의 무의미한 갈등과 단절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우정, 예술, 고립, 상실이라는 주제가 블랙 코미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3) 《더 파벨만스》
“영화는 절대 잊히지 않는 꿈이야.”
1950년대 미국. 어린 '새미 파벨만'은 부모님과 함께 영화관을 찾고, 그곳에서 본 지상 최대의 쇼의 열차 충돌 장면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는 자신의 첫 카메라로 장난감 기차 충돌 장면을 촬영하며 영화 제작에 대한 열정을 키운다. 새미의 아버지 '버트'는 현실적인 공학자로, 영화는 단순한 취미일 뿐이라며 새미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길 바란다. 반면 어머니'미츠'는 예술적 감성을 지닌 피아니스트로, 새미의 창의성을 격려한다. 어느 날, 새미는 가족 여행 중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다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친구 '베니'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있음을 발견한다. 부모님의 불완전한 관계를 알게 된 새미는 큰 충격을 받는다.
새미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나 그는 졸업 영상에서 가해자를 영웅처럼 그려주며, 영화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임을 깨닫는다. 부모님의 이혼 후, 새미는 할리우드에서 꿈을 펼치기로 결심하고 대학을 중퇴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전설적인 감독 '존 포드'를 만나 조언을 듣고,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첫걸음을 내딛는다.
감상평 : 영화는 단순한 오락일까, 아니면 현실을 해석하는 도구일까?
어릴 적 내가 처음 만든 무언가에 열광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새미가 카메라를 들고 가족을 찍으며 느꼈던 감정, 편집 도중 우연히 발견한 진실, 그 모든 과정은 단순히 ‘영화를 좋아하는 아이’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예술이 어떻게 현실을 기록하고, 때로는 사람을 변화시키며, 자신조차 이해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성장기였다.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인 만큼, 진정성과 따뜻함이 묻어나고,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을 섬세하게 풀어낸 점에서 개인적으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감독의 자전적 요소를 통해, 예술과 가족, 정체성과 성장이라는 주제를 따뜻하게 담아낸다. 영화는 현실을 해석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꿈을 좇는 과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4) 《타르》
“시간이 흐르면 소리도 사라지죠. 우리는 순간을 지배할 수 없어요.”
타르는 세계적인 여성 지휘자인 '리디아 타르'가 권력 남용과 개인적 오만으로 인해 몰락하는 과정을 담은 심리 드라마이다. 영화는 그녀의 전성기부터 시작해 서서히 무너져가는 모습을 차분하고 세밀하게 그려낸다. 타르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대중과 음악계를 사로잡은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이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던 그녀의 삶은 어두운 비밀로 얼룩져 있다. 타르는 젊은 여성 음악가들에게 관심을 갖고,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그들을 조종한다. '크리스타 테일러'가 타르와의 관계에서 배제된 후 극심한 우울증을 겪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가족이 타르를 비난하며 법적 소송을 제기한다.
타르는 결국 음악계와 대중의 비판을 받으며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제외되고, 독일을 떠나 동남아시아로 도망치듯 이주해 작은 오케스트라에서 무명의 연주자들을 지휘한다.
감상평 :
위대한 예술가 라고 해도 도덕적 결함이 있다면 그의 작품을 계속 인정해야 하는가?
권력자의 부도덕한 행동을 사회가 단죄하는 과정이 과연 정당한가?
이 영화를 단지 음악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권력을 가진 한 인간이 얼마나 섬세하게 무너져가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타르가 무대 위에서 강렬한 지휘를 펼칠 때 그의 천재성에 감탄했고, 동시에 그의 행동에서 인간적인 이기심과 욕망을 읽었다. 완벽해 보이던 그녀의 일상이 균열을 일으킬 때, 그 불안감이 마치 내 삶의 균열처럼 느껴졌다. 타르가 마지막에 낯선 무대에 서게 되는 장면은 굉장히 상징적이다. 예술과 도덕, 권력과 책임 사이에서 우리는 누구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지휘자라는 강렬한 캐릭터를 중심으로, 예술가의 도덕성과 권력 남용, 사회적 책임이라는 주제를 날카롭게 조명한다. 몰락의 과정을 통해 권력 구조 속 인간의 취약함을 드러낸다.
5) 《슬픔의 삼각형》 (Triangle of Sadness)
“누가 음식 가져왔어? 내가 가져왔지.
그러면 누가 선장이야?”
슬픔의 삼각형은 부유한 엘리트들이 탑승한 초호화 크루즈가 난파되면서 벌어지는 계급 역전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그린 블랙 코미디 드라마이다. '칼'과 '야야'는 인플루언서 혜택으로 억만장자들과 함께 럭셔리 크루즈에 탑승한다. 여기엔 러시아 비료 재벌, 노인 영국 무기상 부부, 괴짜 선장 등 자본주의의 상징적 인물들이 모여 있다. 배가 해적의 습격을 받아 난파되고, 일부 승객들과 승무원들이 외딴섬에 표류하자, 돈과 권력이 사라진 상황에서, 새로운 생존 규칙이 만들어진다.
이전까지 사회에서 최하층이었던 화장실 청소부 ‘아비게일’이 유일하게 생존 기술을 가진 인물로 떠오르며 권력을 장악한다. 그녀는 음식을 조달하는 능력으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선장’이 되고, 과거 권력을 가졌던 부자들은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한다. 그녀는 칼을 성적으로 착취하며 그를 지배하고, 기존 사회 질서가 완전히 뒤집힌다. 결국, 섬에서 탈출할 기회가 생기지만, 아비게일은 기존 질서를 다시 받아들일 것인가, 새로운 권력을 유지할 것인가? 고민에 빠진다.
감상평 :
돈과 명성이 있으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을까? 누가 진짜 권력을 가져야 하는가?
처음에는 블랙 코미디로 시작하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생존 상황에서 기존 사회의 권력 구조가 뒤집히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비게일이 선장이 되고, 부자들이 무력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는 단순한 풍자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권력’이 진짜 어디서 오는 것인지 되묻게 한다. 웃음을 유발하지만 끝엔 씁쓸함만이 남는 이 영화는, 소비사회와 권력의 본질을 정면으로 조롱한다.
풍자와 블랙 코미디를 통해 계급 전복, 권력의 재구성, 인간 본성의 민낯을 드러낸다.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생존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유머와 함께 펼쳐진다.
3. 제95회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작 및 선정 이유
각본상 수상작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다니엘 콴, 다니엘 샤이너트
각본상 선정 이유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히어로 중심의 대서사가 아니라,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한 평범한 중년 여성(에벌린 왕)의 시점에서 멀티버스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을 가장 독창적으로 풀어냈다. 코미디, 액션, 드라마, SF, 무협, 초현실주의, 장르의 경계를 허물면서도 일관된 내러티브를 유지했다. 복잡한 구조 속에서 핵심 서사는 가족과 사랑을 향해 달려간다. 우주가 무의미할지라도, 사랑과 관계는 중요한 의미라는 보편적인 철학적 메시지를 담아냈다.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작 2000년 이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92회 아카데미 각본상:기생충] 계급의 장벽에 대한 인식 (줄거리, 메시지, 한국에서의 의의, 수상 이유 등등) (0) | 2025.05.09 |
---|---|
[제 93회 아카데미 각본상:프라미싱 영 우먼] 침묵에 맞선 한 여자의 반격 (줄거리, 감상평, 수상배경) (1) | 2025.04.27 |
[94회 아카데미 각본상:벨파스트] 착하게 살아라! (수상작과 후보작 소개, 줄거리, 명대사, 감상평, 수상작 선정 이유) (0) | 2025.03.15 |
[97회 아카데미 각본상 : 아노라] 자본주의의 계급은? (수상작과 후보작 정보, 줄거리, 감상평, 수상 이유) (0) | 2025.03.15 |
[96회 아카데미 각본상 : 추락의 해부] 인간의 심리를 해부하다 (수상작과 후보작 소개, 수상작 선정 이유) (0) | 2025.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