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부문에서는 다양한 사회적 주제와 독창적 서사가 돋보이는 다섯 편의 작품이 후보에 올랐다. 계급, 가족, 언론, 젊음, 예술 등 폭넓은 주제를 담아낸 각본들이 주목받았고, 사회적 계급과 여성의 자립을 강렬하게 그려낸 작품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각본상 후보작들의 줄거리와 핵심 메시지, 그리고 수상 작품의 선정 이유를 알아보았다.
1. 각본상 후보작, 각본가 소재
《브루탈리스트》 브래디 코벳, 모나 파스트볼
《리얼 페인》 제시 아이젠버그
《9월 5일: 위험한 특종》 팀 펠바움, 모리츠 빈더, 알렉스 데이비드
《서브스턴스》 코랄리 파르자
《아노라》 션 베이커
2. 각본상 후보작 정보 : 줄거리, 키워드
1) 《브루탈리스트》
정육면체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육면체를 만드는 것이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는 것이다.
라즐로 토스는 2차 세계대전 중 홀로코스트를 겪은 후, 아내 에르제베트와 함께 전쟁으로 황폐해진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다. 그는 새로운 땅에서 건축가로서 인정받기를 꿈꾸며, 기존의 고전적인 건축 양식과는 다른 '브루탈리즘'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디자인을 추구한다. 그러나 시대와 공간, 빛의 경계를 넘어서는 그의 대담하고 혁신적인 스타일은 미국 사회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여러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어느 날, 부유한 사업가 해리슨 리 밴뷰런이 라즐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의 어머니를 기리는 문화센터 설계를 외뢰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라즐로는 자신의 건축 철학을 구현할 기회를 얻지만, 주변의 반대와 해리슨의 압박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즐로는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결국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한다.
감상평 : 예술은 인간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이민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예술과 자본의 충돌, 그리고 전쟁의 상흔이 개인의 창조성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브루탈리즘 건축을 통해 철학적으로 풀어낸다.
라즐로의 건축은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과거의 고통과 현재의 삶을 이어주는 일종의 고백처럼 느껴졌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상처를 지나온 인물이 세상과 다시 연결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건축이라는 점에서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가 현실적 조건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자기만의 질서를 추구해가는 모습은, 예술의 존재 이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감상 후에는 건축이라는 것이 단순히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고, 자기 존재를 표현하는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리얼 페인》
우리는 모두 고통을 겪지만,
그 고통이 우리를 정의하지는 않아.
사촌 형제인 ‘데이빗’과 ‘벤지'는 어린 시절에는 가까웠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거리감과 미묘한 긴장이 흐르는 관계다. 데이비드는 소소한 일상에 만족하며 뉴욕에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고, 그의 사촌 벤지는 자유분방하고 예측 불가능한 성격으로, 데이비드와는 상반된 삶을 살아간다. 어느 날, 벤지가 데이비드를 찾아오고, 둘은 폴란드로 여행을 떠난다. 홀로코스트 당시 희생된 조부모의 뿌리를 찾고, 가족의 과거를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여행 초반부터 두 사람은 사소한 말다툼을 반복한다. 데이빗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냉정하고 체계적인 성격이고, 벤은 감수성이 예민하게 곤두서 있는 성격으로. 가족이라는 공통된 배경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폴란드에서의 그들이 방문하는 곳마다 홀로코스트의 흔적이 남아 있고, 가족사의 고통이 배경처럼 깔려 있다. 그러나 이 여행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거나 조부모의 흔적을 찾아가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자신들, 그리고 형제 사이에 쌓여 있던 감정의 골이 조금씩 드러나는 시간이다.
벤은 조부모의 고통과 가족사의 비극에 더 깊이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이 여행을 통해 뭔가 정서적으로 해결하고 싶어 한다. 반면 데이빗은 애써 그것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지만, 그런 태도는 벤에게 오히려 무관심처럼 보인다. 두 사람의 대화는 점점 더 감정적으로 팽팽해지고, 오랫동안 쌓여온 형제 간의 불편함과 상처가 하나씩 표면 위로 떠오른다.
여행이 끝나가면서, 두 사람은 과거의 비극과 현재의 자신들 사이에서 감정을 정리하려 애쓴다. 과거 가족의 아픔과, 지금 자신들이 안고 있는 고통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서로의 고통을 조금 더 이해하려는 미묘한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감상평: 우리는 어떻게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가
가족의 역사와 개인의 상처가 교차하는 여정을 통해, 감정적 치유와 형제 간 화해의 가능성을 섬세하게 그려낸 드라마.
이 작품은 단순히 형제 간의 갈등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다. 삶에 대한 태도가 극단적으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여행하며, 과거와 현재, 상처와 사랑을 동시에 마주하는 과정을 조용히 따라간다. 벤지와 데이빗의 감정선은 미세하고도 사실적이어서, 나 역시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억눌러 왔던 말들이 떠올랐다.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떠났던 여정이, 결국 현재의 자신을 이해하는 길이 되어가는 모습이 인상 깊다. 고통이 우리를 정의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진하게 남는다.
3) 《9월 5일: 위험한 특종》
사람들은 보고 싶어 할 겁니다.
생중계로요.
1972년 뮌헨 올림픽 기간 중, 미국의 ABC 방송국 스포츠팀은 최초로 올림픽 생중계를 시도하며 선수촌 근처에 스튜디오를 설치하고 있던 중, 이스라엘 선수촌에서 총성이 들려오고,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들을 인질로 잡았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 사건을 특종으로 다루기 위해 프로듀서 '제프리 메이슨'은 취재팀을 조직하고, 선수 출입증을 위조하여 선수촌 내부로 잠입해 생중계로 이를 보도한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취재팀은 테러리스트들이 자신들의 방송을 보고 있음을 알게 된다.
테러리스트들이 경찰의 움직임을 파악하게 만들어 상황을 더욱 악화되고, 협상은 실패로 돌아간다. 인질과 테러리스트들은 공항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언론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앞다투어 보도하며 혼란을 가중시킨다.
감상평 : 언론은 어디까지 사실을 보도해야 하는가?
실화를 바탕으로 언론 윤리와 정보의 책임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 생중계가 현실에 미치는 영향과 보도의 경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하게 전달한 영화. 보는 내내 숨이 막히듯 긴장됐고, 특히 언론이 테러 현장을 생중계하며 실시간으로 사태를 악화시키는 모습에서 충격을 받았다. 정보의 전달이 곧 무기가 될 수 있다는 현실, 사실을 전달하면서도 그 사실이 어떻게 사용될지를 고민하지 않는 무책임함은 낯설지 않았다. 언론이 권력과 맞서야 하는 시대에 오히려 '권력 그 자체'가 되어가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 보내는 경고 같았다. 이 영화는 "우리는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날카롭게 던진다.
4) 《서브스턴스》
젊음은 축복이지만,
그 축복은 영원하지 않다.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한때 유명했던 할리우드 스타로, 한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한 커리어를 누렸지만, 나이가 들고 외모가 변하면서 업계에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자신이 소비되고 버려진 존재로 취급되는 현실에 엘리자베스는 씁쓸함과 불안, 분노를 느끼며 살아간다. 50번째 생일에 오랫동인 진행해온 에어로빅 TV쇼에서,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된다. 절망에 빠진 엘리자베스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에서 한 간호사로부터 "서브스턴스"라는 활성제를 권유 받는다.
이 물질은 놀라운 효과를 약속했다.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으면, 젊고 완벽한 버전의 또 다른 자아가 육체적으로 탄생하는 것이었다. 자아는 외적으로 완벽하고, 사회적으로 이상적인 존재로 재탄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엘리자베스는 망설임 끝에 이 약을 사용하게 되고, 실제로 자신의 젊고 매혹적인 시간으로 복제된 자신을 만나게 된다. 처음엔 그 존재를 통해 젊음을 다시 누리고,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만족감을 느낀다. 과거 자신이 잃어버렸던 욕망과 관심, 사회적 위치를 다시 되찾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점점 뒤틀리기 시작한다. 젊고 완벽한 모습으로 새로 태어난 자아는 점점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하고, 엘리자베스의 통제 밖으로 벗어나기 시작한다. 두 존재는 하나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지만, 욕망과 자아의 충돌로 인해 갈등이 깊어진다. 젊음과 욕망, 자아에 대한 집착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으로 변해가고, 엘리자베스는 어느 순간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혼란스러워한다. 결국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자아와 마주하며, 이 무한한 순환과 경쟁 속에서 무언가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음을 깨닫는다.
감상평 : 우리는 왜 젊음과 아름다움에 집착하는가?
사회가 부여하는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여성의 자아 분열과 정체성 혼란을 독창적인 설정과 강렬한 심리 묘사로 표현해낸 작품이다. 자신의 본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왜 어려운가? 처음엔 SF적인 설정에 끌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영화가 다루는 주제는 너무도 현실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여성의 외모와 젊음을 향한 사회의 집착, 나이 듦에 대한 공포,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엘리자베스가 젊은 자아와 대립하며 겪는 혼란은 결국 나 자신과 싸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준다. 무섭지만 아름다운, 자기 인식과 수용의 드라마였다.
5) 《아노라》
내 인생은 내 거야.
누구도 대신 결정할 수 없어.
‘아노라’는 브루클린에서 살아가는 젊은 여성이다. 낮에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밤이 되면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당장의 생활비와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면서도, 아노라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아노라는 클럽에서 러시아 재벌의 아들 ‘비탈리’를 만나게 된다. 비탈리는 거칠고 충동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로, 뉴욕에서 자유롭게 방탕한 삶을 즐긴다. 둘은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서로에게 빠져들게 된다. 아노라는 비탈리의 재력과 그가 보여주는 자유로움에 매력을 느끼고, 비탈리는 아노라의 솔직함과 생동감에 끌린다.
그가 아노라와 진심으로 관계를 이어가려 하자, 그의 가족과 측근들은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비탈리와 아노라의 결혼 계획이 구체화되면서, 재벌가의 가족은 그녀를 제거하거나 통제하려는 한다. 아노라는 비탈리와의 결혼이 자신을 다른 삶으로 이끌어줄 것이라 믿는다. 비탈리의 부모는 아노라를 아들에게서 떼어놓고 결혼을 무효화시키려 한다. 비탈리는 부모의 압박에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고, 결국 겁을 먹고 아노라를 버리고 러시아로 도망친다. 아노라는 비탈리를 찾기 위해 직접 러시아로 향한다. 이제 아노라는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
감상평: 사랑은 돈과 권력 앞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관계를 통해 계급, 여성의 자립, 자유의지라는 묵직한 주제를 현실적이고 강렬하게 풀어낸 현대적 성장 서사다.
그녀는 진정한 사랑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현실적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이 영화는 단순한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라, 자유와 사랑, 자립에 대한 뜨거운 선언처럼 느껴졌다. 아노라는 상황에 휩쓸리는 인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선택을 지켜내려는 인물이다. 그녀가 맞서야 하는 건 단지 돈 많은 남자의 가족이 아니라, 여성에게 끊임없이 주어지는 ‘정해진 역할’ 그 자체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아노라가 러시아로 향하는 그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진짜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의 얼굴은 늘 가장 강하다.
3. 제97회 아카데기 각본상 수상작 및 선정 이유
각본상 수상작 :
《아노라》 션 베이커
《아노라》 각본상 선정 이유 :
성 노동자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 상류층과 노동자 계층 간의 대비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구조와 권력관계를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복잡한 인물 묘사와 섬세한 내러티브로 깊은 감동과 공감을 이끌어냈으며,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를 예술적 표현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2025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게 되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