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제96회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작들은 다양한 장르 속에서 인간관계, 사회 구조, 개인의 정체성을 깊이 있게 탐구했다. 독창적인 스토리와 심리적 긴장감으로 주목받은 각 후보작의 줄거리와 키워드를 정리하고, 수상작이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를 살펴본다.
1. 각본상 후보작 소개
작품명 | 각본 |
《바튼 아카데미》 | 데이비드 헤밍슨 |
《추락의 해부》 | 저스틴 트리에, 아서 아라리 |
《패스트 라이브즈》 | 셀린 송 |
《메이 디셈버》 | 사미 부르크, 알렉스 메카울레이 |
《마에스트로》 | 브래들리 쿠퍼, 조시 싱어 |
2. 각본상 후보작 정보 : 줄거리, 키워드
1) 《바튼 아카데미》
"때때로 네가 가장 원하지 않는 사람이,
네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일 수도 있어."
1970년대, 미국의 한 명문 사립학교 바튼 아카데미. 크리스마스 방학을 앞두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가족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지만, 몇몇 사정이 있는 학생들은 학교에 남게 된다. 학교에서는 이들을 돌보기 위해 한 명의 교사를 남겨두는데, 이번에는 고집스럽고 까다로운 고전문학 교사 ‘폴 헌햄’이 그 역할을 맡게 된다.
폴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는 교사로, 원칙적이고 융통성 없는 태도로 인해 학생들뿐 아니라 동료 교사들에게도 거리감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부모의 이혼과 가정 문제로 방학 동안 갈 곳이 없는 앵거스’도 학교에 남는다. 둘은 처음부터 서로에게 벽을 느낀다. 폴은 앵거스를 문제아로, 앵거스는 폴을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어른으로 보지만, 외부와 단절된 학교라는 공간에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며,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의 상처와 외로움을 엿보게 된다.
아들을 전쟁에서 잃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조리사 메리도, 메리는 폴과 앵거스에게 따뜻한 정을 베푼다. 셋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심스레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특히 폴과 앵거스 사이에 미묘하게 쌓여가던 긴장은 결국 폴이 앵거스에게 진심 어린 조언과 배려를 보여주면서 풀리기 시작한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다시 학생들이 돌아오지만, 폴과 앵거스는 예전과는 달라져 있다. 둘 사이에 생긴 이해와 유대감은 소리 없이 서로의 삶에 남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만나는 따뜻한 위로. 상실과 고통은 어떻게 치유되어 가는가.
키워드: 세대를 뛰어넘는 갈등과 화해, 상실과 치유, 가족의 의미, 인간관계의 변화
2) 《추락의 해부》
"진실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믿고 싶은지가,
법정에서 더 중요하지 않나요?"
프랑스 알프스 외딴 산장에서 독일 출신 작가 ‘산드라’와 그녀의 남편 ‘사무엘’, 그리고 시각장애를 가진 아들 ‘다니엘’이 함께 살아간다. 어느 날, 다니엘이 집 근처에서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아버지 사무엘이 눈 덮인 마당에서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경찰은 사무엘이 2층 다락방 창문에서 추락한 것으로 보지만, 단순한 사고인지, 자살인지, 혹은 타살인지 불분명하다.
조사 과정에서 산드라가 남편과 최근 여러 갈등이 있었던 사실이 드러난다. 특히 산드라가 사무엘보다 더 성공한 작가였고, 남편이 집필에 대한 좌절과 심리적 불안을 겪고 있었다는 점이 법정에서 집중 조명된다. 산드라는 결국 살해 혐의로 기소되고 재판에 서게 된다.
법정에서는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해부되듯 파헤쳐진다. 검찰 측은 산드라가 우월한 위치에 서 사무엘을 정신적으로 압박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산드라의 성격, 문화적·사회적 배경까지 모든 것이 논쟁의 대상이 된다. 특히 유일한 목격자인 아들 다니엘의 증언이 사건의 중요한 열쇠로 부각되지만, 어린 나이와 시각장애, 부모 사이의 갈등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기에 진실을 명확히 밝히는 데 한계가 있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사건은 단순한 죽음의 원인 규명을 넘어, 진실과 거짓, 기억과 해석의 경계로 확장된다.
과연 법과 정의는 절대적 진리일까, 아니면 사회적 구조(재판)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우리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키워드: 법정 드라마, 진실과 허구, 결혼과 권력관계,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 정의의 의미
3) 《패스트 라이브즈》
어쩌면 우리는 전생에서 사랑했던 사이일지도 몰라.
이번 생에서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거고.
서울에서 함께 자라난 소녀 ‘나영’과 소년 ‘해성’은 어린 시절부터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은 친구 사이다. 그러나 12살이 되던 해, 나영은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고, 두 사람은 아무런 작별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헤어진다.
20대가 된 두 사람은 SNS를 통해 다시 연락이 닿게 된다. 나영은 이제 뉴욕에서 ‘노라’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며 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고, 해성은 서울에서 공학도로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오랜 시간과 거리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영상통화로 다시 가까워지고, 서로의 삶을 공유하며 잊고 있었던 감정을 되살린다. 그러나 물리적 거리와 각자 다른 삶의 궤도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노라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해성과의 연락을 잠시 끊기로 결심하고, 이후 미국에서 남편 ‘아서’와 만나 결혼한다.
12년 후, 해성은 뉴욕으로 여행을 오게 되고, 두 사람은 다시 재회한다. 이미 다른 삶을 선택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감정을 확인하면서도, 그 감정이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다. 해성과 노라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현재의 삶 사이에서,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은 과거와 현재의 ‘인연’에 대해 담담히 마주한다.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일까.
키워드: 운명과 선택, 첫사랑과 미련, 정체성과 이민 경험
4) 《메이 디셈버》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당신이 듣는 버전과 내가 듣는 버전은 전혀 다를 수 있어."
조지아 조용한 해변 마을, 20여 년 전 일어난 ‘그레이시’와 ‘조 파월’의 스캔들은 마을의 평화로운 일상을 뒤흔들며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었다. 당시 그레이시는 성인이었고, 조는 미성년자였던 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사회의 비난과 법적 처벌을 감수하면서도 관계를 이어가 결혼까지 했다. 이제는 자녀들과 함께 평범한 가정을 꾸린 듯 보였다.
어느 날, 그레이시의 과거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의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배우 ‘엘리자베스’가 이 부부를 찾아온다. 엘리자베스는 역할에 깊이 몰입하기 위해 그레이시와 시간을 보내며 그녀의 내면을 파고들려 한다. 처음엔 그레이시도 친절하게 엘리자베스를 맞이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엘리자베스의 접근 방식은 점점 더 집요하고 날카로워진다. 엘리자베스는 인터뷰를 핑계로 그레이시와 조의 관계 이면에 깔린 권력, 죄책감, 억압된 감정을 들춰내려 한다. 조는 여전히 과거의 사건에 대해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고, 그레이시는 그 모든 것을 평범한 일상으로 덮으려 애쓰고 있다.
엘리자베스가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레이시와 조의 관계는 미묘하게 흔들린다. 배우로서 캐릭터에 몰입해가는 엘리자베스는 점점 그레이시의 행동과 말투까지 닮아가고, 이는 그레이시에게 위협처럼 다가온다. 표면적으로 평온해 보였던 가정과 과거의 사건들은 엘리자베스의 관찰과 질문을 통해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며, 결국 과거에 지워졌던 권력 관계, 죄책감, 자기 정체성의 불확실함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누가 진짜 피해자이고, 누가 진짜 가해자인가
기억은 객관적인가, 아니면 주관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일까?
키워드: 윤리적인 선을 넘는 사랑, 미디어와 사생활, 진실과 연기, 권력, 피해자와 가해자.
5) 《마에스트로》
"우리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
1940년대, 젊고 재능 있는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레너드 번스타인’은 뉴욕 필하모닉에서 지휘를 하며 주목받기 시작한다. 음악계에서는 그의 탁월한 재능과 에너지 넘치는 카리스마에 찬사를 보내지만, 번스타인 자신은 음악 외에도 더 크고 복잡한 무언가를 품고 살아간다. 한편, 배우 ‘펠리샤 몬테알레그레’는 지적이고 우아한 번스타인의 매력과 열정에 끌리면서도 그가 가진 자유분방함과 복잡한 내면을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지만, 번스타인의 삶은 남편과 아버지라는 틀에만 묶일 수 없었다.
번스타인은 사회적 성공, 가족,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그는 동성애적 성향을 숨기지 못하고, 결혼 생활과 사회적 이미지 속에서도 자신의 욕망과 자유를 좇는다. 펠리샤는 그런 번스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도 점점 지치고, 그들의 관계에는 균열이 생긴다. 번스타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것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 채 흔들린다.
시간이 흐르고, 펠리샤가 병에 걸려, 삶의 끝이 가까워지자, 두 사람은 다시 진심으로 마주하게 된다. 번스타인은 결국 외적인 성공과 화려함 뒤에 남은 자신과 펠리샤에게 진실하게 다가가려 한다.
사랑과 예술은 공존할 수 있을까. 예술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키워드: 전기 영화, 예술과 삶의 충돌, 결혼과 희생, 예술과 삶
3. 제96회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작 및 선정 이유
각본상 수상작 :
《추락의 해부》 저스틴 트리에, 아서 아라리
《추락의 해부》 각본상 선정 이유 :
추락의 해부는 인간의 심리를 다층적으로 탐구한 작품으로 남편의 사망을 둘러싼 의문을 풀어나가면서, 결혼 생활의 균열을 조명한다. 단순히 진실을 찾는 법정 공방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과 관계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전개된 것이 독창적으로 평가받았다. 주인공 산드라는 사랑과 갈등, 모호한 도덕적 경계를 넘나드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표현되었다.
미스터리를 넘어서 인간 심리를 섬세하게 파고드는 서사를 구축하여, 진실을 단순히 흑백 논리로 규명하지 않고, 복잡한 감정과 해석의 여지를 남긴 점이 심사위원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고, 그 결과 각본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진실은 언제나 해석이 다양하게 가능하다는 것.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관계와 정보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